불행을 모르고 살아온 50년



50여년전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에는 때없이 밤깊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집이 있었다. 음악에 취미가 있어 노래를 곧잘 부르는 딸애가 가야금을 타겠다고 떼를 쓰다가 제풀에 잠들군 하여 부모들도 잠못들군 하였던것이다. 마음같아서는 가야금이 아니라 그보다 더 한것도 해주고싶은 부모들이였지만 앞못보는 딸애에게 있어서 그것은 실현될수 없는 꿈이여서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당시 5살이였던 그소녀, 가야금을 타겠다고 떼를 쓰던 눈먼아이가 오늘은 가야금독주가로 인민의 사랑을 받으며 긍지높은 삶을 누려가고있는 김명숙녀성이다. 낳은 부모들도 눈먼자식이라고 앞날에 그늘만 지위주던 그때 어린 명숙이의 소질과 꿈을 귀중히 여기고 키워주는 품이있었다. 나라에서 세워준 대동맹학교에 입학한 명숙은 무료교육의 혜택속에 공부도 하고 예술소조원이 되여 가야금도 배웠다. 그리고 예술소조공연무대에도 나섰다. 뛰여난 가야금연주솜씨로 하여 공연때마다 절찬을 받은 그는 14살 때부터는 당시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예술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워가게 되였다. 뜨거운 정을 기울여주는 교원들과 학생들속에서 명숙은 어였한 가야금독주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후대육성을 위한 길에도 재능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나라에서는 장애자의 몸으로 예술활동에 적극 참가하고있을뿐아니라 미래의 음악가를 키우는데 많은 기여를 한 그에게 공훈예술가의 칭호도 안겨주었다. 지난해에는 장애자예술단의 한 성원으로 외국공연무대에도 내세워주었다. 그가 영국방문에서 제자와 함께 가야금2중주를 하였을 때 사회자가 이들은 평범한 가야금수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이다, 앞못보는 명숙선생이 20년간 이렇게 훌륭한 제자를 키웠다고 장내에 알리자 관람자들은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명숙녀성은 그날 이렇게 말하였다. 《휼륭한 제자의 뒤에는 휼률한 스승이 있다고 저에게도 키워주고 내세워준 스승, 내 조국이 있습니다. 앞못보는 소녀의 꿈을 오늘까지 활짝 꽃피워준 고마운 조국이 있어 저는 50여년간 불행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김명숙은 오늘도 누려가는 삶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가야금의 선률에 담아 끝없이 울려가고있다.

제1차 조선손말심의위원회 심의 진행

청력장애자들에 대한 보청기착용

장애회복관련 실무강습진행

척추파렬증 및 뇌수종 국제련맹 협조실무대표단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중앙위원회를 방문

2016년 제2차 교정기구이동수리봉사 진행

도이췰란드 맹인협조대표단 조선맹인협회 방문

조기손말양성반 정상운영

대외사업을 활발히 벌려

과학적인 회복과 영양관리에 힘을 넣어

경쾌한 무용동작, 째인 안삼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