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장에는
영원한 인민의 태양
당시 일제의 군사적강점하에 놓여있던 조선은 하나의 감옥이나 같았다. 청운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애국지사들은 《이 나라를 구원할 장수 없느냐.》고 가슴치며 통탄하였고 모국어까지 빼앗긴 망국민들은 살길을 찾아 낯설은 타향으로 흩어져갔다.
나라를 구원할 령수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던 바로 이러한 시기에 혁명의 길에 나서신
그이는 수난자의 피눈물과 망국의 치욕으로 얼룩졌던 조선민족의 꺼져가던 넋에 재생의 자양분을 주신 태양이시였다.
청년공산주의자들은 그이를 조선의 밤하늘에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 비치는 조선의 별로 칭송하는 노래까지 지어부르며 받들었으며 조선의 운명을 구원할 구세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모시였다.
20성상 항일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조선민족의 념원인 조국해방을 실현하신 그이께서는 1945년 10월 14일 인민들과 첫 상봉을 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부강조국을 일떠세우자고 호소하시였다.
시인 리찬은 《장군은 가리울수 없는 우리의 빛, 장군은 가리울수 없는 우리의 태양》이라고 칭송하였고 인민들은 《민족의 태양
하지만 청소한 공화국은 또다시 적들의 무력침공으로 하여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그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생활을 의논해주시였으며 그들의 의사와 요구를 제때에 정책에 반영하여 실현해주시였다.
궂은날 마른날 가리지 않으시고 공장과 농촌, 벌방과 산골 할것없이 인민의 행복을 위해 걷고걸으신 그이의 자욱은 조선의 그 어느곳에나 뜨겁게 새겨져있다.
참으로 10대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30대에 건국위업을 이룩하시고 근 반세기동안 국가수반으로 활동하시면서 조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수호하시고 조선을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국가로 일떠세워주신
하기에 조선인민은 자기 나라와 민족을
고결한 리념, 무한한 헌신으로 거룩한 혁명생애를 수놓아오신
영원한 인민의 태양
《노래는 혁명투쟁의 위력한 무기이며 생활의 친근한 길동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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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골프장
당의 품은 우리 사는 집
당을 따라 청춘들아 앞으로
청춘송가
세상에 부럼없어라
이 하늘은 너희들의것